즉흥연주에 대한 이해
재즈를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를 “우리 속에 갇혀 있으나, 그 곳을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자유로운 영혼의 날개짓 소리”로 표현하였다. 가슴을 울리는 작가의 상상력을 무미건조한 표현으로 번역하여 본다면 재즈는 드러나는 표현 방식에 있어 나름의 형식미를 요구하지만 그 형식을 탈피하기 위해 끊임없는 시도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대부분의 재즈 연주는 어느 곡을 연주할지, 어떤 구성과 편곡으로 연주할지를 사전에 약속하고, 중간에 솔로 연주를 맡기로 한 연주자가 나름대로의 즉흥성을 동원하여 자신의 파트를 책임지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연주자에게 있어 재즈의 아름다움은 같은 곡이라도 다른 연주자와 다르게, 어제와 다르게 연주하는데 있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재즈 본능은 즉흥연주에서 비롯된다.
“어떻게 하면 그들과 다르게 연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을 넘어서 뛰어난 연주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100여년의 역사 동안 재즈 뮤지션들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누가, 어떻게 이 질문에 답을 찾았는지 궁금하다면 루이 암스트롱을 시작으로 챨리 파커, 소니 롤린스, 마일즈 데이비스, 오네트 콜맨, 호레이스 실버, 쳇 베이커, 허비 핸콕, 팻 메스니 등 재즈 거장들의 이야기를 들춰보면 된다. 이들을 포함하여 무수히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규정된 틀과 정해진 관습, 익숙한 연주 방식을 거부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함으로써 재즈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갔다.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하려는 재즈의 속성은 혁신의 또 다른 모습이다.
재즈에서의 즉흥연주가 연주의 한 형태가 아닌 본질로서 인식되는 것은 재즈의 태생적 배경에 기인한다. 교회에서 출발하여 오선지 위에서 형식미를 갖추며 발전해온 클래식과 달리 뉴올리안즈 유흥가에서 시작된 재즈는 당시 연주자들이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못한 이유로 탈형식적인 특성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연주의 주된 방법론으로서 즉흥성을 채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즉흥성’이라는 단어가 갖는 가벼움이 즉흥연주자의 연주에 대한 ‘진지함’을 왜곡시키거나 희석시킨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즉흥연주의 본질에 대하여 재즈평론가 김현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재즈에서 즉흥연주의 중요성은 지대하지만 그 자체를 하나의 본질로 파악했을 때 오히려 재즈의 매력은 급감한다. 연주자의 솔로 부분이 유난히 돋보일 때 우리가 얻는 감동의 원천은 작곡을 훌륭히 소화하여 ‘좋은’ 솔로 연주를 펼쳤다는데 기인하는 것이지 그토록 좋은 솔로 연주를 ‘즉흥적’으로 행했기 때문은 아니다. ‘작곡을 훌륭히 소화’했다는 것은 훌륭한 즉흥연주를 가능하게 하는 근간이 연주자의 뛰어난 직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연주자의 관점에서 즉흥성을 관장하고 있는 재즈 연주의 본질은 ‘직관’이며 이러한 직관은 이미 행해졌던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자신만의 음악을 위한 오랜 기간의 창조적 행위를 수반한다. 즉흥성이 재즈를 통해 나타난 주된 방법론이라면, 직관은 그 즉흥성을 관장하고 있는 재즈 연주의 본질이다. 재즈는 연주뿐 아니라 감상에 있어서도 ‘농익은 시간의 축적’을 필요로 하는 음악이며, 연주자에게는 ‘아는 만큼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고 감상자에게는 ‘아는 만큼 들리는 음악’이다.
직관을 즉흥성을 관장하는 재즈 연주의 본질로 인식하는 관점은 즉흥성을 조직에 접목하여 설명하려는 학자들의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혼돈과 불확실성이 높은 경영환경에 신속히 대응할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재즈의 즉흥성을 조직에 접목하려는 학문적 시도는 1990년대 ‘조직즉흥성organisational improvisation’이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학문적 관점에서 즉흥성은 대체로 ‘자발적인 방식으로 행동을 이끌어 내는 직관’으로 정의되고, 이런 컨셉을 조직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몇몇 학자들은 즉흥성이란 개념을 조직에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로 자발적 행동을 유발하는 개인의 역량을 따로 분리하거나 개발하기 어렵다는 점과 즉흥적 행동은 계획이 잘못되었을 때 나타나는, 계획적 행동에 비해 열위적 개념으로 인식하는 편견을 제시하였다. 특히 민쯔버그Mintzberg는 계획적 행동이 보다 낫다는 편견은 계획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관행을 만들고 새로운 아이디어, 통찰력, 탐구 활동을 억압하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자연스러운 음악이라고 해서 결코 자연적으로 발생되지는 않는다. 즉흥 연주자들은 자신의 음악적 독창성을 표현할 수 있는 프레이즈를 만들기 위해 수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다른 연주자들과의 역동적 상호작용dynamic interplay을 위해 음정과 리듬을 아주 빠르고 예리하게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농익은 시간의 축적’으로 만들어지는 즉흥연주는 한 소절의 멜로디를 연주하기 위해 음악가들이 쏟는 땀과 열정, 투입되는 무수한 시간과 노력을 이해하여야 하는 힘겨운 창조의 산물이다.
피터 드러커 또한 그의 저서 <피터 드러커의 위대한 혁신>에서 혁신을 ‘번뜩이는 천재성의 결과가 아니라 지루하고 고된 작업’으로 규정하고, 혁신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항상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시장은 늘 혁신의 기회를 위한 시그널을 보낸다. 시장의 작은 변화가 시그널인지 노이즈인지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직관’이 필요하다. 즉흥성을 관장하는 재즈 연주의 본질이 연주자의 ‘직관’에 있는 것과 같이 경쟁사보다 빨리 사업기회를 찾아 내고 기업 성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능력은 본질적으로 직관을 요구한다. 흔히 ‘비즈니스 통찰력’으로 불리는 이러한 직관은 쉽게 인식할 수 없는 트렌드들을 읽게 만들고 시장의 작은 변화를 혁신의 기회로 인식하게 만든다.
즉흥연주가 이미 행해졌던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자신만의 음악을 위한 오랜 기간의 창조적 행위를 수반하는 것처럼 변화에 대한 직관, 즉 비즈니스 통찰력 또한 ‘농익은 시간의 축적’과 힘겨운 노력이 동반되는 ‘훈련된 상상력’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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