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피터드러커는 1909년 11월 1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피터 드러커의 집안은 네덜란드에서 인쇄업을 하다가 오스트리아로 이주하여 번창했다. 피터의 할아버지는 은행가였고 할머니는 클라라 슈만의 제자로서 젊은 시절 피아니스트였다. 경제학자였던 아버지 아돌프 드러커는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의 외국무역성 장관을 지냈으며, 어머니는 오스트리아에서 최초로 의학을 배운 여성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양친과 교분을 나누던 많은 지식인들과 접촉하며 자랐다. 월요일에는 아버지 주최로 ‘정치의 밤’이 열렸으며, 수요일에는 어머니 주최로 ‘의학과 정신분석의 밤’이 열렸다. 경제학자 슘페터, 하이에크, 철학자 폰 미제스, 문학자 토마스 만, 의학자 프로이트와 같은 당대의 석학들이 이 모임에 자주 모였고 크리스마스 때에는 당시 빈의 유명 여배우인 마리아 뮐러가 방문해 괴테의 작품을 낭독해 주기도 했다. 유명인을 만날 때마다 아버지는 피터드러커에게 꼭 악수를 하게 했다. 아홉 살 때 프로이트를 만난 그는 평생 그때의 장면을 기억했다. 드러커는 부모님의 친구들이 세계 정세, 인문, 철학, 사상 등에 관해 토론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지켜보며,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식별하는 눈을 뜨게 된다. 

1920년대

드러커 자서전에 따르면 청소년기의 드러커에게 일어 났던 몇몇 사건들은 드러커의 가치관과 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23년 11월 11일,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황제가 퇴위하고 공화정이 선포 되었다. 8일 뒤인 19일은 피터 드러커의 열 네 번째 생일이었다. 오스트리아 사람은 대부분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공화국의 날은 승리를 의미하는 거였다. 그날 오후 붉은 깃발을 앞세우고 인류 최초의 ‘자연발생적 시위’가 발생하여 도시는 행진하는 노동자들로 가득찼다. 법적으로 피터 드러커는 행진에 참여하면 안 되는 나이였음에도 그는 제일 앞줄에서 깃발을 들고 행진을 즐겼다. 그런데 그의 앞에 웅덩이가 나타났다.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돌변했다.

나는 웅덩이를 좋아한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웅덩이의 풍덩풍덩하는 소리보다 더 좋은 음향을 별로 알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나는 그런 웅덩이를 풍덩거리면서 밟고 건넌다. 하지만 그 웅덩이는 그런 식으로 건너지 않았다. 당시 나는 군중들에 의해 원치 않는 방식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웅덩이의 한쪽 끝에서 맞은편 끝까지 철퍼덕거리며 건너가야 했다. 나는 웅덩이의 끝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내 뒤를 따르던 덩치 큰 의과대학생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깃발을 넘겨버렸다. 그대로 대열에서 벗어나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의아하게 생각한 부모님이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냐고 물으니 피터 드러커는 대답한다. “… 단지 제가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에요.”

그가 처음으로 스스로를 ‘구경꾼’이라고 깨달은 이 경험은 그의 인생을 관통하며 그에게 시대의 역할을 부여했다. 구경꾼으로써 사람들과 사건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핵심과 흐름을 발견해 내는 일을 맡은 거였다. 이 길을 가기 위해 그는 과감히 ‘군중’을 벗어난다.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언제나 자신의 양심과, 지혜를 이용해 쉽지 않은 길을 걸었다.

드러커는 1927년 빈 되블린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그해에 빈을 떠나 아버지의 바램대로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재학 중에는 소규모 무역회사에서 3개월간 견습생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1929년 드러커는 함부르크대학에서 프랑크푸르트대학으로 이적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증권 애널리스트로 일하기도 하였으나 세계 대공황으로 인한 뉴욕시장의 붕괴와 함께 실직하고 프랑크푸르트의 가장 큰 일간지인 Frankfurter General-Anzeiger에서 기자 및 편집인으로 일했다.

1930년대

피터드러커는 1931년 프랑크푸르트대에서 국제법·공법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졸업 후에는 신문기자와 대학의 시간강사로 두 가지 일을 병행해 나간다. 1933년 히틀러 나치정권이 들어서자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런던의 보험회사 및 은행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드러커의 세계관은 고국인 오스트리아와 그가 교육을 받았던 독일에서 등장한 파시즘과 전체주의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는 독일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유대인 철학자인 슈탈의 이론을 통해서 나치와 히틀러가 얼마나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밝히는 소책자를 내기도 한다. 나치는 그의 작품을 금지하고 소각시켰다. 이 일로 인해 피터 드러커는 거의 목숨을 잃을 뻔 하였으나 이후에도 그는 양심에 거스르는 일은 하지 않는 진정한 지식인의 자세를 잃지 않고자 최선을 다했다. 드러커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피신해 1937년 최초의 저서인 <경제인의 종말The End of Economic Man>을 발표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책에 깊이 감명을 받은 처칠은 이 책을 참모들의 필독서로 정했다고 한다. 드러커가 조직, 조직의 유효성, 개인 윤리, 사회적 책임에 초점을 맞추게 된 이유는 사회의 역기능과 주요 기관의 붕괴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역기능과 붕괴의 결과로 파시즘, 전체주의, 공산주의 등 ‘주의ism’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와 독재가 등장했고 이로 말미암아 드러커는 심한 고초를 겪었다. 드러커는 이상주의나 몽상가가 아니다. 그는 최악의 사회적 실패를 몸소 경험했다. 그는 극단주의가 다시금 고개를 들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무능한 관리자, 비윤리적인 리더, 무책임한 국민이라는 나약함에 맞서 싸웠다. 그의 목표는 본분을 다하고 책임을 지는 사회, 즉 균형을 유지하고, 공정하고, 혁신적이고, 효과적이고, 지속적이고,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이었다.

1930년대 출판된 저서

<The End of Economic Man>, 1939 : <경제인의 종말> 한국경제신문사, 2008년

1940년대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뉴욕 교외 브롱크스에 있는 사라 로렌스 여자대학에서 시간강사로 경제학과 통계학을 강의하였으며, 1942년 버몬트 주 베닝턴 대학에서 철학 및 정치학을 가르치며 대학교수로서의 첫 번째 경력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드러커는 당시의 무기력한 유럽의 실상과 20세기에 등장하여 세계를 지배한 산업사회를 깊이 있게 분석한 책 <산업인의 미래The Future of Industrial Man>를 출간하였다. GM 경영진들의 필독서가 된 이 책 덕분에 드러커는 알프레드 슬론 GM 회장으로부터 GM의 컨설팅을 요청받아 수행하였고 경영 컨설턴트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며 진정한 의미의 경영학자로서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18개월 동안의 GM 컨설팅 경험을 통해 1946년 출간한 <기업의 개념The Concept of Corporation>은 실제로 조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어떤 도전과 문제, 원리를 갖고 있는지 보여준 최초의 시도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하여 드러커는 GM과 산업 전체는 노동을 비용이 아닌 자원으로 여겨야 함을 역설하였으며 특히 GM에게 “경영자적 태도managerial attitude를 갖춘 책임감 있는 근로자responsible worker가 운영하는 자율 공장 공동체self-governing plant community”의 개념을 받아 들일 것을 권고하였고 기업 활동이 공동체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것을 제안하였다. 일례로 <기업의 개념>에서 GM은 공장이 있는 도시에서의 건강문제에 대해 회사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는데 당시 GM은 이러한 제안이 심각한 경영권 침해라고 생각하고 완강히 거부하였다. 그러나 <기업의 개념>은 GM 경영진이나 출판사의 예상을 뒤엎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미국 기업에, 공공제도에, 정부기관에 즉각적인 영향을 끼쳤고, ‘조직’을 사회나 공동체의 관점이 아닌 독자적 존재로 다룸으로써 경영을 연구의 한 분야이자 학문 영역으로 정립하게된 계기가 되었다.

1940년대 출판된 저서

<The Future of Industrial Man>, 1942 : <피터드러커의 산업사회의 미래> 21세기북스, 2013년

<The Concept of Corporation>, 1946 : <기업의 개념,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드러커의 최초 경영학 저서> 21세기북스, 2012년

1950년대

드러커는 베닝턴대학에서 1950년 뉴욕대학 경영학부 교수로 자리를 옮기며 이곳에서 1971년까지 21년간 재직하게 된다. 시어즈 로벅Sears Roebuck, IBM, GE 등의 컨설팅 경험을 바탕으로 “매니지먼트를 발명했다”는 말을 듣게 된 <경영의 실제The Practice of Management>를 1954년 발표하였다.   

이 책은 현대 기업의 등장과 경영자 역할을 예견한 최초의 저서로서 목표관리MBO는 물론, 경영자의 직무, 조직구조, 의사결정, 동기부여, 자율경영, 조직문화, 경영자 개발 등 경영의 주요 이슈를 명확하고 일관적이며 응집된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다룬 현대 경영학의 바이블이다. 드러커는 이 책에서 기업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기업의 목적은 외부에 있어야 한다. 사실 기업은 사회의 한 기관이므로 기업의 목적은 사회에 있어야 한다. 기업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설명한 정의는 한 가지 뿐이다: 고객을 창출하는 일. 고객은 기업의 토대이며 기업을 존속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적어도 드러커에게 고객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기업의 본질과 직결되는 핵심 개념인 것이다.드러커는 이 책에서 “투입량보다 더 큰 산출량을 얻는 것은 도덕적 영역에서만 가능하다”라고 언급하며 경영진의 도덕적 품성과 성실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경영의 토대는 경영 집단, 특히 최고 경영진의 성실성이며 경영진이 모범을 보이고 직원들은 그들의 행동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드러커는 지적으로 뛰어나지만 성실성이 부복한 경영자보다는 도덕적 판단력이 뛰어난 성실한 경영자를 선호했다.

1950년대 출판된 저서

<The New Society>, 1950 : <피터드러커 New Society> 엘도라도, 2007년

<The Practice of Management>, 1954 : <경영의 실제> 한국경제신문사, 2006년

<America’s Next Twenty Years>, 1957 : 번역서 없음

<The Landmarks of Tomorrow>, 1957 : 번역서 없음

1960년대

뉴욕대학 경영대학 교수로서 “가장 영예로운 교수” 칭호를 받게 되며 1964년 <결과를 위한 경영Managing for Results>, 1966년 <자기경영노트The Effective Executive>, 1968년 <단절의 시대The Age of Discontinuity>를 출간하게 된다.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자기경영노트The Effective Executive>를 “조직 내 경영자executive로서 갖추어야 할 효과성effectiveness을 위한 간결한 청사진이며, 동시에 성과와 성취를 위한 자기경영 실천 가이드”로 불렀다. 이 책은 1966년 처음 발간 당시 미 아이젠하워 정부의 고위관리자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으로 개발되었다. 드러커가 이 책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실제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부분을 처음부터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드러커는 이러한 능력을 ‘효과성Effectiveness’으로 정의하고 이는 배울 수 있고, 배워야만 한다고 하였다. ‘효과성effectiveness’의 사전적 정의는 “원하는 결과를 창출해내는 능력’이다. 어원인 라틴어 ‘Effectivus’는 창의적, 생산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효과성’이란 주어진 일을 단순히 잘 하는 것이 아닌, 행위 주체자가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지적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개념이다. 반면에 ‘효율성efficiency’은 “주어진 일을 적은 자원으로 어떻게 빨리 해내느냐는 것”이다. 드러커는 효과성을 “getting the right things done”이라 하고, 효율성을 “getting the things right”이라 하였다. 목표 달성의 핵심은 “실제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부분을 처음부터 잘 해내는 것”이다. 드러커는 이를 ‘효과성’이라 하고, 공헌에 초점을 맞추고 성과에 책임을 지는 지식근로자가 받드시 갖추어야 할 능력이라 하였다.

풍부한 지식으로 무장한 경영자는 많지만 효과적인 경영자는 적다. 경영자는 그가 갖고 있는 지식 때문에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창출하는 데 요구되는 올바른 일을 하는 것getting the right things’ 때문에 보수를 받는다. 이런 당연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영자, 지식근로자들은 비효과적이라는 것이 드러커의 주장이다. 이 책에서는 효과적인 지식근로자에게 필수적인 다섯 가지 습관들을 제시한다. 시간을 관리하는 방법, 업무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방법, 강점을 최대로 활용하는 방법, 공헌에 집중하는 방법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법이 그것이다.

1960년대는 드러커 일생의 화두였던 ‘지식근로자’의 개념이 정립된 시기이다. 드러커는 지식근로자라는 용어를 1959년 <내일의 이정표The landmarks of Tomorrow>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1964년 <창조하는 경영자Managing for Results>에서는 지식경영의 기초적 용어들인 핵심역량, 지식작업, 지식분석 등의 용어를 사용했고, ‘지식이 생산요소’임을 분명히 했다. 1966년 <자기경영노트The Effective Executive>에서는 지식근로자와 조직 내 리더, 관리자를 모두 포함한 개념으로 “Executives”를 사용하여 지식근로자에게 요구되는 효과성effectiveness과 경영습관practices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1968년 <단절의 시대The Age of Discontinuity>에서는 지식이 주요 생산요소를 넘어 유일한 생산요소가 되고 있음을 보다 명확히 했다. 이후 1976년 <보이지 않는 혁명The Unseen Revolution>과 1993년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Post-Capitalist Society>에서 ‘육체노동자’와 ‘자본’ 대신에 ‘지식근로자’와 ‘지식’이 생산요소가 된 사회를 여전히 자본주의 또는 공산주의라 부를 수 없으므로, 앞으로의 사회를 지식사회로 명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0년대 출판된 저서

<Managing for Results>, 1964 : <피터드러커 창조하는 경영자> 청림출판 2008년

<The Effective Executive>, 1966  : <피터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한국경제신문사, 2003년

<The Age of Discontinuity>, 1968 : <단절의 시대> 한국경제신문사, 2003년

1970년대

뉴욕대학에서 캘리포니아 클레어몽트 경영대학원 교수로 자리를 옮기셨다. 이 기간에 Pomona College에서 동양 미술을 강의하거나 샌프란시스코 소재 Asian Art Museum의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는 등 동양 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가르치고 공유하는 많은 활동을 하였다.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에 20년 임기의 컬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73년 발간된 <피터드러커의 매니지먼트: 경영의 과업, 책임, 실제Management: Tasks, Responsibilities, Practices>는 드러커 저서 중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수년간 혼신의 힘을 다해 집필에 몰두해 탄생한 이 책은 한마디로 ‘드러커 경영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즉 GM 내부로 들어가 2년간의 연구 끝에 기업 경영과 조직의 작동원리를 처음 제대로 밝힌 1946년의 <기업의 개념The Concept of Corporation>, 학문으로서 경영을 ‘정의’했다는 평가를 받은 1954년의 <경영의 실제The Practice of Management>, 목표 달성과 성과 창출이 경영자의 존재 이유임을 밝히고 방법론을 제시한 1964년의 <창조하는 경영자Managing for Results>와 1966년의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The Effective Executive> 등 그의 주요 저작들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드러커 자신이 머리말에서 밝혔듯, 필요하다면 전작들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기도 했다. 국내에는 두 개의 버전으로 출간되었다. 2007년 청림출판가 출판한 <피터드러커 매니지먼트>는 원저의 일본어판 요약본을 번역한 것이고, 2008년 21세기북스가 출판한 <피터드러커의 매니지먼트: 경영의 과업, 책임, 실제>는 원저를 완역한 것으로 상하권 두 권으로 총 14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총 3부 6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과업’에 관한 것으로 조직에 주어진 본질적 과업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2부는 ‘경영자’에 대해 다루며 경영자의 일과 업무, 기술 및 경영조직 등을 설명하고, 3부 ‘최고경영진’에서는 최고경영진에 주어진 과업과 전략, 이를 뒷받침하는 조직구조 등을 다루고 있다.

1970년대 출판된 저서

<Technology, Management and Society>, 1970 : 번역서 없음

<The New Markets and Other Essays>, 1971 : 번역서 없음

<Men, Ideas and Politics>, 1971 : 번역서 없음

<Drucker on Management>, 1971 : 번역서 없음

<Management:Tasks, Responsibilities, Practices>, 1973 : <피터드러커 매니지먼트> 청림출판 2007년 / <피터드러커의 매니지먼트: 경영의 과업, 책임, 실제> 21세기북스 2008년

<The Unseen Revolution>, 1976 : <보이지 않는 혁명> 단국대학교 출판부 1981년

<People and Performance: The Best of Peter Drucker on Management>, 1977 : 번역서 없음

<Adventures of a Bystander>, 1978 : <방관자의 시대> 범우사 1990년

1980년대

1980년대의 미국은 벤처창업이 유례없이 활발했던 시기이다. 대기업은 투자를 늘림으로써 산업계는 기대를 뛰어 넘는 높은 고용율을 보였고 그 어느때 보다 혁신과 기업가정신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드러커는 이들에게 훌륭한 스승이었다. <혁신과 기업가정신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을 저술한 시기도 1980년대 였다. 혁신은 피터 드러커가 쓴 모든 글에 내재된 근본 사상이다. 드러커가 혁신과 기업가정신에 실질적인 관심을 갖기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재직할 때 부터이다. 그는 2년 동안 이 주제를 중심으로 소규모 그룹을 만들어 매주 한 번씩 저녁 세미나를 개최했다. 주로 대기업 중견 경영자들이 주축이 된 세미나에서 개발된 개념과 아이디어는 회원들이 2년에 걸쳐 매주 그들이 하는 일과 조직에서 검증을 했으며, 드러커 또한 자신의 컨설팅 활동을 통해 검증하고, 효과를 입증하고 재정리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1985년 출간된 <혁신과 기업가정신>은 이와 같은 드러커의 다년 간의 관찰, 연구 및 실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책이다. 책의 머리말에서 드러커는 이 책이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전반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다룬 최초의 책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동시에 이 분야에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받고 싶다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면서 이 분야에 더 많은 연구가 지속되기를 희망했다.

1980년대 출판된 저서

<Managing in Turbulent Times>, 1980 :  <혼란기의 경영>, 한국경제신문사 2013년

<Toward the Next Economics and Other Essays>, 1981 : 번역서 없음

<The Changing World of the Executive>, 1982 : 번역서 없음

<The Last of All Possible Worlds(소설)>, 1982 : 번역서 없음

<The Temptation to Do Good>, 1984 : 번역서 없음

<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 1985 : <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가정신>, 한국경제신문사 2004년사

<Frontiers of Management>, 1986 : <프런티어의 조건>, 청림출판 2011년

<The New Realities>, 1989 : <이미 시작돼 21세기 새로운 현실>, 시사영어사 1989년

1990년대

1990년 드러커 비영리재단The Peter Drucker Foundation for Nonprofit Management(이후 Leader to Leader Institute로 개명함)을 설립하고 명예 이사장으로 재임하였으며, 1994년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주최하는 오랜 전통의 고드킨 강좌Godkin Lecture에 석좌 강사로 초대되었다. 클레어몽트대학 경영대학의 공식명칭은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으로 개명되었다.

피터 드러커의 글과 강의 가운데 60퍼센트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사회에 관한 것이다. 드러커는 민간 부문에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사회 전반의 건강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런 이유로 드러커는 자신을 과학자가 지구상의 물리적인 생명체의 본질과 생태학을 관찰하듯이 인위적인 사회 조직을 관찰하는 ‘사회생태학자’라고 생각했다. 드러커는 기업과 정부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비영리단체와 사회단체의 역할에 대하여도 지식인으로서 많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드러커의 나이가 80대에 들어선 1990년대에는 비영리단체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이 시기에 <비영리단체의 경영Managing the Nonprofit Organization> 및 <다섯가지 가장 중요한 질문The 5 Most Important Questions>의 저술활동을 통하여 사회공헌부문의 질적 성장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드러커는 사회를 구성하는 3개 부문인 공공조직, 기업 그리고 비영리기관이 만들어 내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현명하게 통치하고 효과적이고 원활한 방식으로 계획을 수행하는 민주적인 기관이자, 성장과 발전의 필요성과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모험, 혁신, 기업가정신을 권장하는 효율적인 시장이고, 아울러 의무를 공평하게 분담하고 협력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사회의 비영리단체로 묘사했다. 목적이 다른 이 세 부문이 균형을 이룰 때 각자 본문을 다하며 책임을 지는 사회가 이룩될 수 있다고 하며 이를 ‘기능하는 사회functioning society’로 정의하였다. 1990년 발간된 <비영리경영>에서 드러커는 비영리기관의 공통된 사명을 “그들의 고객으로 하여금 자아실현의 삶, 이상을 펼치는 삶, 신념을 가지고 신념대로 살 수 있는 삶을 돕고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고 그들의 고객 혹은 지역사회에 공통된 목적의식을 심어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를 포함한 비영리기관의 효과적 경영방법으로 이 책에서는 사명, 효율적인 성과관리, 효율적인 인사관리 및 인간관계, 자기계발 등의 주제가 다루어졌다. 1993년 출간된 <다섯가지 가장 중요한 질문>은 비영리기관을 위한 자기진단 도구의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나 지금은 기업을 포함하여 다양한 조직에서 자기진단, 혹은 계획수립을 위한 경영원칙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섯가지 질문이란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고객에게 제공할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의 결과는 무엇이 되어야하는가’ ‘우리의 계획은 무엇인가’이다.

1990년대 출판된 저서

<Managing the Nonprofit Organization>, 1990 : <피터드러커의 다섯가지 경영원칙>, 아시아코치센터 2010년

<Managing for the Future>, 1992 : <피터드러커의 미래기업>, 한국경제신문사 1992년

<The Ecological Vision>, 1993 : 번역서 없음

<Post-Capitalist Society>, 1993 :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한국경제신문사 2002년

<Managing in a Time of Great Change>, 1995 : <피터드러커 미래의 결단>, 한국경제신문사 1995년

<Drucker on Asia: A Dialogue between Peter Drucker and Isao Nakauchi>, 1997 : 번역서 없음

<Peter Drucker on the Profession of Management>, 1998 :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 한국경제신문사 2000년

<Management Challenges for the 21st Century>, 1999 : <21세기 지식경영>, 한국경제신문사 2002년

2000년대

2002년 봄, 드러커는 93세의 나이에 대학에서의 마지막 강의를 마친다. 피터드러커 경영대학원은 ‘피터드러커 마사토시 경영대학원Peter F. Druker and Masatoshi Ito Graduate School of Management’으로 개명하였다. 2002년에는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훈장인 자유훈장the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상하였다. 피터 드러커의 경영철학과 이론, 윤리리더십을 전세계에 전파 확산하기 위하여 1999년 출범한 ‘드러커 아카이브the Drucker Archives는 2006년 ‘드러커 인스티튜트Drucker Institute’로 새롭게 출발하였다. 2005년 11월11일 드러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의 자택에서 아흔여섯 번째 생일을 8일 앞두고 영면하였다. 당시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그를 표지인물로 내세우고 ‘경영을 창조한 피터 드러커, 그의 가르침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한국에서는 경희대학교 경영대학 장영철교수, 문국현 당시 유한킴벌리 대표 등이 피터드러커가 살아 계신 2005년 직접 찾아 뵙고 드러커의 통찰과 지혜를 공유 확산할 소사이어티 창설에 대한 제안을 드리고 드러커의 허락을 받아 2006년 9월 피터드러커 소사이어티 코리아Peter Drucker Society of Korea가 공식 출범하게 되었다.

2000년대 출판된 저서

<The Essential Drucker>, 2001 : 2001년 청림출판에 의해 <프로페셔널의 조건> <변화리더의 조건> <이노베이터의 조건>으로 분할되어 출판되었다.

<Managing in the Next Society>, 2002 : <Next Society>, 한국경제신문사 2007년

<A Functioning Society>, 2002 : 번역서 없음

<The Daily Drucker>, 2004(조셉 마시아리엘로Joshph Maciariello와 공저) : <피터드러커 경영바이블> 청림출판 20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