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3월 2일, 오후 2시 30분,

재즈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이날 뉴욕 맨허튼 30번가 콜럼비아 레코드사의 스튜디오에 6명의 연주자가 들어섰다. 트럼펫의 마일즈 데이비스, 베이스의 폴 쳄버스, 알토 색소폰의 줄리안 캐논볼 애덜리, 드럼의 지미 콥, 테너 색소폰의 존 콜트레인, 피아노의 빌 에반스.

밴드의 리더격인 33살의 마일즈 데이비스는 언제나 그렇듯 그를 쳐다보는 이에게 단번에 고립감을 느끼게 할 정도의 냉정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이날 만큼은 흥분감을 애써 감추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당시에 대세를 이루던 다양한 코드변화와 빠른 템포의 즉흥연주가 연주자의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생각을 갖고 새로운 시도를 모색해 왔던 마일즈 데이비스에게 이 날은 그 동안의 실험이 음반으로 구체화되는 의미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몇 개의 단순한 코드변화로 멜로디를 강조하는 방식의 실험적 아이디어는 1953년 조지 러셀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고 마일즈 데이비스는 1958년 그의 음반 Milestones을 통해서 이미 그 가능성에 대하여 자기점검을 끝낸 상태였다. 1958년 한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을 보면 새로운 음악적 시도에 대해 얼마나 확신하는지 알 수 있다.

재즈의 새로운 움직임은 시작되었다. 화려한 코드변화에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으며, 주어진 시간에 할 수 있는 것들은 훨씬 많아졌다. 얼마나 독창적인 선율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도전이 있겠지만 연주자에게는 적은 코드로 더 많은 가능성a few chords but infinite possibilites이 주어질 것이다.

사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의 혁신성은 이날 이전에도 계속 있어왔다. 찰리파커, 셀로니우스 몽크, 디지 길레스피 등에 의해 1940년대 뉴욕 브로드웨이 52번가 민튼즈 플레이하우스Minton’s Playhouse에서 태어 난 비밥재즈의 열풍 속에서 19살의 어린 나이에 찰리파커와 잼세션을 하면서, 비밥 연주자로서 본격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한 마일즈 데이비스는 이전 쿨재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바 있었고 기존 비밥과 다른 하드밥을 주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 명성을 얻고 있던 6명의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경우는 이 날이 처음이었고,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과는 달리 마일즈 데이비스를 제외한 연주자들에게 악보에 대한 어떤 정보도 사전에 주어지지 않았다. 멤버가 모두 모이자 마일즈 데이비스는 자신이 만든 주제 선율을 간단히 보여주고 연주할 곡에 대한 스케치를 나눠주었다. 악보로 불릴 정도의 형식은 불과 몇 군데에서 간신히 찾을 수 있을 정도였고 간단한 멜로디 라인과 스케일scales을 이용하여 연주하라는 메시지가 적힌 것이 전부였다. 당시 유행하던 코드 위주의 연주 방식은 연주자의 연주력을 필요로 하지만 나름의 형식을 통해 연주자는 곡의 진행 방향을 예측하며 즉흥연주를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스케일 중심의 연주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파격적인 것이어서 어떻게 연주할 것인지에 대해 모두들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연주방식에 대해 일체의 설명을 해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마일즈 데이비스가 이날 연주자에게 요청한 코멘트는 ‘스케일에 따라 연주’하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연주는 리허설없이 시작되었고 녹음되었다. 이 날 한번에 녹음된 음반 Kind of Blue는 재즈 역사상 최고 명반으로 평가 되었고, 이후 재즈의 발전 뿐 아니라 록앤롤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왜 마일즈 데이비스는 연주할 곡에 대한 사전정보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으며, 악보는 왜 그렇게 간단하였고, 왜 그들은 리허설도 없이 바로 녹음에 들어갔을까? 마일즈 데이비스는 이미 훈련된 상상력disciplined imagination으로 무장된 거장 연주자들이 최대한의 즉흥성을 발휘할 수 있으려면 최소의 개입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었다.

지켜야 할 것이 적을수록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커지기 마련이다. 흔히 모달재즈modal jazz로 불리우는, 마일즈 데이비스가 그 날 시도한 작곡과 연주에서의 새로운 접근방식은 ‘적은 수의 코드가 만들어 내는 넓은 공간a few chords, wide space’에서 연주자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모달재즈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작곡 및 연주 방식이 연주자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자유’를 제공한 것은 틀림없지만 초창기 루이 암스트롱에 의해 즉흥 솔로연주가 형식을 갖기 시작한 이후 연주자의 ‘자율성’은 즉흥연주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가 되어 왔다. 따라서 ‘최소한의 구조가 만들어 내는 최대한의 자율성minimum structure, maximum autonomy’은 재즈의 오랜 전통이자 특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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