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드러커는 그의 저서 <매니지먼트>에서 “기업이든 공공서비스 조직이든 모든 조직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관이다. 그것들은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적 목표를 완수하고 사회와 지역사회, 개인의 특정한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것들 자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다.”라며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조직의 존재이유를 분명히 하였다. 기업의 이윤창출이 기업으로서 중요한 과업이긴 하지만 목적 자체가 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교회 역시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조직으로서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보여줄 때만이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조직은 드러커가 말한 온전하게 기능하는 사회(fully functioning society)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존재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온전하게 기능하는 사회는 정직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이웃을 보살피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수 많은 교회들이 교인들을 대상으로 또는 지역사회에서 이런 자질을 함양시키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 그러한 노력은 올바른 결과로 평가되고 정당화되어야 한다. 드러커는 목사 밥 버포드와의 대화에서 은혜를 베푸는 자선 그 자체는 성과가 아니며 사람들이 변하는 것이 제대로 된 성과라고 하였다. 어떻게 보면 교회는 사람을 바뀌게 하는 전문 조직인 셈이다.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게 함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한 사람, 훌륭한 성인으로 자란 청소년, 건강한 시민으로 자리잡은 소외된 자 등은 모두 교회가 추구해야할 성과, 즉 ‘변화된 한 인간’이다. 기독교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말이긴 하지만 더 늦기 전에 교회는 교회의 존재 이유 즉 사명을 심도있게 고민하고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규명하여야 할 때라 생각한다. 

1994년 피터드러커는 그의 저서 <비영리단체의 경영>내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교회의 사명을 새롭게 하고 올바른 성과를 위한 변화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반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사회 전반의 문제는 모두 정부가 해결할 수 있고, 또 정부가 해결할 책임이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들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 스스로가 해결할 문제이며 그들이 속한 사회 안에서 해결되어져야 합니다.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무엇이 요청된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것을 사회부문, 즉 자원봉사적인 비영리조직단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과업을 맡아야 할 조직단체 중 어떤 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사실상 깊은 역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훌륭하고 강한 전통을 가진 종교단체가 있으며, 그것이 불교이든 기독교이든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오랫동안 지도자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단체는 오늘의 새로운 과업을 감당하기 위해서 새로운 목표와 새로운 입지를 세우고 새롭게 조직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땅의 많은 교회들이 진정으로 선한 의도를 갖고 뭔가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그들의 좋은 의도나 노력에 비해 올바르고 마땅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교회는 찾아 보기 힘들다. 드러커는 그를 따르는 목회자인 밥 버포드, 릭 워렌과의 대화에서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것(to make the church more church-like, not to make it more business-like)”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교회에 경영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교회를 교회답게 하기 위한 것이지 기업처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변화된 한 인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보다 더 많은 신도를 만들어 대형교회로 성장하는 것이 신도나 목회자의 더 큰 관심이 되고, 나눔의 사역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교회 곳간을 채우는 일이 목회자의 중요한 과업이 되는 한 교회는 사회로부터 끝없는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허접한 논리로 사람들을 편향된 정치화로 몰아 넣는 목회자나, 신앙은 삶과 분리될 수 없음에도 영생과 선택받는자가 신앙의 목표라고 떠들어대는 교회는 존재 이유를 따지기 전에 사회악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조직인 교회가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고 공동체성에 대한 무지와 망각을 갖게 될 때 그것은 암과 다를 바 없다. 어느 세포가 자기 혼자 무한성장을 하겠다고 욕심을 부릴 때 우리는 그런 세포를 암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피터드러커의 충고대로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일과 교회가 만들어 내는 진정한 성과가 무엇이어야 하는 지에 대해 더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고민하길 바라지만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다.    

Print Friendly, PDF & Email